[데스크칼럼] 상상력 소년
[데스크칼럼] 상상력 소년
  • 편집국장 김동욱
  • 승인 2015.12.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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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를 유독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다.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형사 콜롬보가 등장하는 책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책벌레 소년의 취향은 미스터리물에서 점점 발전해 모험과 공상과학에까지 이르게 된다. 머릿속은 온통 이야기로 가득했다. 읽는 것만으로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발산할 수 없게 되자, 소년은 직접 소설과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엉뚱한 스토리의 그의 습작 소설에 친구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의 아버지는 개봉하는 작품마다 빼놓지 않고 보는 영화광이었다.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다녔고, 집에서도 비디오를 열심히 봤다. 어느샌가 소년은 멋진 영화감독이 되는 꿈을 꾼다. 중고교 시절엔 시나리오와 촬영을 도맡으며 독립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예술대학 진학을 꿈꿨지만, 어려워진 집안 형편 탓에 일반 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한다. 그의 머릿속에선 멋진 복장과 첨단 무기를 든 특공대원의 침투 장면같은 그럴싸한 영상들이 매일매일 샘솟고 있었다.
자신의 욕망을 분출할 길이 없어 무료한 캠퍼스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날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영상을 만나게 된다. 조악한 그래픽이었지만, 콧수염 달린 작은 캐릭터가 장애물을 헤치고 나가는 모습이 잠재돼 있던 그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보고, 게임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다시 게임 개발자로 인생항로를 조금씩 바꿔갔다. 그는 독특한 콘셉트의 ‘이알쿵푸’같은 게임을 개발하던 코나미에 입사하게 된다. 이 사람이 바로 ‘코지마 히데오’다.
1986년 코나미에 입사해 드디어 게임개발자의 꿈을 이룬 코지마는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아쉽게도 MSX 개발팀에 배속된다. 패미컴보다 게임 개발에 제약이 많았던 MSX 환경에서는 오로지 아이디어로 승부해야했기 때문에 고뇌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하니, 하마터면 그의 명작 게임들이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암담한 고민의 터널 속에서 코지마를 빠져나오게 한 작품이 게임 역사의 큰 획을 그은 ‘메탈기어’였다. 전쟁 게임이 한창 인기를 모으던 시절이었지만, MSX의 성능 한계로 수많은 캐릭터와 총탄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시나리오 쓰기로 단련된 그의 상상력이 이때 빛을 발한다. 많은 적군을 굳이 화면 상에 보이지 않게 하고, 적진 속으로 몰래 잠입해가는 역발상을 한 것이다. 메탈기어는 고뇌 속에서 피어난 코지마만의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참신한 콘셉트와 높은 완성도로 MSX용 ‘메탈기어’는 소위 대박을 치게 된다.
코지마의 또 하나의 히트작 ‘스내처’도 청소년 시절부터 갈고 닦아온 그의 영상 연출력이 한 몫했다. 당시까지는 볼 수 없었던 영화같은 연출을 게임 속에 녹여낸 독특한 작품으로 오랜기간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스내처는 어드벤처 장르였기 때문에 몇장의 이미지와 영상을 적절히 배합한 영화적 연출이 비교적 쉬웠다. 게다가 섬세한 스토리 전개까지도 가능했기 때문에 코지마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한 게임인 셈이다. 
성공을 거머쥔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어느 인터뷰에서 게임 개발자가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소설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사실 작품을 완성시킬 자신이 없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게 바로 게임이었다. 게다가 게임은 플레이어의 개입에 의해 완성될 수도 있는 쌍방향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로 전세계에 수많은 팬을 가진 ‘코지마 히데오’가 얼마 전, 30년 가까이 근무했던 코나미를 그만뒀다. 수개월 전부터 게임 시장에 퍼지기 시작한 코지마와 코나미의 결별이 현실로 다가왔다. 코나미 측은 12월 15일로 계약이 만료됐다고 코멘트할 뿐 구체적인 퇴직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코나미 = 코지마’라는 흥행의 끈은 이제 자연스럽게 풀렸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코지마프로덕션’으로 과거의 맹장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들의 첫 작품은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와 플레이스테이션4용 독점 타이틀로 계약했다. 자유의 날개를 단 코지마의 상상력이 뿜어낼 가공할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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