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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연봉은 '빛 좋은 개살구'

  • 김수연
  • 입력 2003.03.2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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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연봉 프로게이머의 첫 탄생은 프로게임리그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테란의 황제로 불리는 임요환 선수다. 임요환의 동양제과 억대연봉 계약 이후, 세간의 관심사는 온통 또 다른 억대 연봉의 주인공이 과연 누가 될 지에 쏠렸다.

프로야구나 축구선수들이 그러하듯 e-스포츠라 일컫는 프로게임계도 판을 키워보자는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프로게이머’라는 신종 직업군이 생겨나면서부터 청소년들은 물론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 떼돈을 벌 수 있는 직업으로 선망의 대상이 됐다.

현재 국내에서 정식 프로로 등록된 게이머는 16개 종목 200여명에 달하며 프로게이머 대상자까지 포함하면 220여명이 넘는다. 그러나 문제는 ‘프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대다수의 게이머들이 아예 기본적인 생계조차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프로게이머에게 1억 연봉을 꿈꾸는 일은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큼 어렵다. 본지에서 현재 왕성하게 활동 중인 프로게이머 1백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바로는 1백 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프로게이머가 전체의 25%에 불과했다. 더욱이 전체 조사 인원의 30%는 전혀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쨍하고 해뜰 날’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실력만 쌓으면 언제든지 1억 연봉자가 될 수 있다는 기약 없는 희망을 꿈꾸면서 말이다. 이 같은 수치는 연봉이나 고정적인 급여가 아니라 방송이나 이벤트 수익을 포함한 금액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그렇다면 과연 프로게이머들 중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는 몇이나 될까? 엄밀히 따져 국내에서 1억대 연봉을 받고 있는 프로게이머는 단 한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그 속을 헤집어보면 1억 연봉이라 하기엔 어쩐지 미심쩍다. 이 수치에 버금가는 프로게이머들도 몇몇 있지만 1억의 신화를 이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부풀리기식 언론플레이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앞으로 받게될(얼마인지 모르지만) 상금을 미리 예측해 포함시킨 수치를 공식적인 연봉금액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몸값으로 잘 알려진 임요환의 경우, 스폰서 형태로 동양제과와 1년 간 1억 6천만원의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6천만원이 1년 운영비로 책정되어 있으며 연봉의 총 금액은 분기별로 4회에 나누어 지급된다. 그러나 월 500만원의 운영비는 개인이 연습실을 임대하고 운영하는데 있어 사실상 터무니없이 부족한 액수다. 개인적으로 매니저를 고용하고 너댓명의 팀원들 임금(기본적인 교통비 및 식대)까지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임요환 개인의 순수 연봉도 사실상 1억원이라 보기 어렵다.||실질적으로 정식 게임단을 운영 중인 기업의 경우는 어떨까? 연봉이 얼마든 간에 세금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에 계약금과 연봉을 합친 액수를 일컬어 흔히 ‘연봉’이라 칭한다.

그러나 연봉이 5천 이상인 선수들도 월 급여는 1~2백 선이며 나머지 부분은 계약금으로 선지급되지만 계약금을 받는 프로게이머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몇 되지 않는다.
계약기간은 선수에 따라 6개월~1년으로 나뉘어지며 가장 많은 프로게이머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칸의 경우는 기본적인 교통비 및 식대만 지급하고 상금에 따른 인센티브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중 억대 연봉 대열에 거론되는 몇 안 되는 프로게이머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프로게이머를 시작할 때 개인적으로 활동하기엔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매니저 밑에서 팀 생활을 한다. 추후 실력과 명성이 따라주면 팀별로 기업 스폰을 받거나 선수 개인이 스카우트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계약금의 일정액은 철저한 계약관계에 의해 배분된다. 결과적으로 선수가 손에 쥐게되는 금액은 공개된 연봉에 비해 많게는 절반 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프로게이머들의 연봉 부풀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추후, 프로게이머들이 성장해 소속사로 입단할 경우 계약조건을 체결하는데 있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체로부터 고정적으로 스폰을 받는 국내 게임단은 6~7개 정도다. 그러나 소속사에서 정식 계약을 체결한 프로게이머 수는 극히 드물다. 소속사 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각종 대회에 출전하지만 알고 보면 ‘견습생’이라는 딱지가 붙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 업체가 운영하는 게임단은 10여명에 가까운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소속사와 정식 계약을 한 선수는 단 2명뿐이다. 작년까지는 견습생들의 최저 활동비가 지원이 됐었으나 올해 들어 그마저도 지급이 중단됐고, 결국 10여명의 견습생들은 콩고물도 못 얻어먹으면서 업체를 홍보해주는 셈이다. 더 나아가 이들을 먹여 살리는 건, 유일하게 연봉을 받고 있는 두 명의 선수와 감독이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고동락해 온 팀원들을 위해 방송 출연료, 상금, 이벤트 수입에서 한 부분을 떼어내는 것이다.

견습생으로라도 발을 붙일 수 있는 게이머는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축에 속한다. 소속사가 없는 팀은 매니저가 자금을 조달한다. 매니저들 중에는 PC방 사장 출신들이 많으며, 팀 운영을 위해 PC방을 팔아 넘긴 사례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오랜 시절 게이머와 매니저가 한데 어울려 고생하다가 팀원 중 누가 상금이라도 받게 되면 비율을 정해 운영비로 쓴다. 팀 내 실력 있는 선수들이 많으면 덜 고생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팀원 전체가 휘청거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일도 허다하다.

대다수 게이머들은 현재 프로게임시장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억대 연봉으로 포장되어 돈 잘 버는 직업으로 인식되어가고 있지만 대회상금과 이벤트 수당을 다 포함해 100만원도 채 못 버는 프로게이머가 75% 이상이나 되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실력이 안되면 도태되기 마련. 그러나 실력을 검증 받고 상위랭킹에 올라있는 프로게이머들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그래도 좋아하는 게임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라며 그 언젠가를 기다리고 있는 게 프로게이머의 현실이다.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도 ‘프로’답지 못한 생활을 하고있는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의 애환이 우선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이 시급하다. 억지스럽게 부풀려 한두 명의 억대 연봉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게임시장을 키우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겉포장을 그럴싸하게 꾸미고 무조건 부풀리기만이 능사는 아니며 실제 고액의 연봉을 받는 소수의 프로게이머들의 ‘성공신화’만을 부각시키기 보다 프로게이머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프로의식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좀더 나은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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