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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든 링’ 스토리텔링 논란, 맥락 잃은 시나리오 전개 합당한가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22.03.15 19:08
  • 수정 2022.03.15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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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든 링’은 볼륨이 큰 게임이다. 맵을 구석구석 뒤진 뒤에 약 100시간에 달하는 여정 끝에 보스를 죽이고 엔딩에 돌입한다. 부푼 가슴을 앉고 엔딩이 나오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설명 몇 줄을 남기고 엔딩이 끝난다. 개발자 이름이 올라가고, 그것으로 끝이다. 황당하기 그지 없는 엔딩이다. 그런데 장면을 천천히 뜯어 보면 온갖 복선들이 녹아 있다. 친절한 설명 보다 몇몇 심볼과 동작으로 여러 이야기들을 숨겨 놓는다. 같은 장면인데 해석이 모두 다르다. 엔딩 다운 엔딩은 없고,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비로소 엔딩이 보이는 식이다. 

이 같은 스토리텔링은 게임 전반에 드러 난다. 게임은 대다수 내용들을 숨겨 놓고 유저들이 추측하도록 만든다. 특정 아이템 설명에서, 장소에서, 사람에서, 혹은 비밀 문서에서 장식에서 내용들을 설명하고 이를 이어 붙이는 형태로 스토리텔링이 전개 된다. 

일례로 바닥에 아이템이 담긴 시체가 누워 있다면, 누군가에게는 일종의 보물상자 대신 사용하는 장식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죽어 있는 국왕으로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일족을 배신한 배신자로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전해줘야 할 이야기를 전하지 않아 또 다시 단서가 끊어진 퀘스트로 보인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여러 해석이 나오게 되는 구조인 셈이다. 
각기 다른 관점에서 내용을 보고 합당한 해석을 내리면 그것으로도 괜찮은 결말이 나올 수 있을 법하다. 상상속에서는 나쁘지 않은 설계다. 그런데 직접 겪어 보면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곳곳에서 튀어 나온다.

게임을 시작할 때 만났던 NPC가 플레이타임을 기준으로 100시간이 지난 뒤에 다른 방에서 발견되는 식이다. 하루에 10시간씩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라면 10일 뒤에 캐릭터를 다시 만나는 셈이다. 그것도 약 5초 대화한 것이 전부인데 이 캐릭터의 뒷 이야기를 유추해야 한다. 심지어 캐릭터간 대화도 역시 은유로 진행 된다. 이에 맞는 단서는 유저가 알아서 찾아야 하는데, 다음에 다시 만나려면 또 몇십 시간이 소요될지 모르는 일 아닌가. 

이런 형태로 만나는 캐릭터들이 수십 종에 달한다. 그 중 중요한 퀘스트를 가진 캐릭터들도 있고, 그저 단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캐릭터들도 있어 혼란은 가중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 입장에서는 맥락 없는 단편이 계속 이어지는 구조다. 옴니버스 속에 옴니버스가 있고, 그 옴니버스 속에 다시 옴니버스가 들어 있는 형태가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추적을 포기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머릿속에 남은 실낱같은 정보를 가지고 다음 회차로 넘어가 풀이를 시도하고, 다시 시도하는 형태가 반복되어서야 비로소 큰 줄기가 잡히는 방식으로 게임은 전개 된다. 
이런 형태로 게임을 플레이 하려면 플레이어는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흔한 동상 하나를 붙잡고 만세를 불렀다가 원을 그렸다가 누웠다가 모자도 바꿔 써 본다. 정답을 맞춰 성공했더니 동상 포즈가 변한다. 그게 다다. 어느 순간 자다가 벌떡 일어나 곰곰이 스크린샷을 들여다 보니 뭔가 보인다. 이렇게 확보된 단서를 맵 곳곳을 돌면서 맞춰 보고 또 다시 문제 풀이에 나선다. 
신문을 보고 암호를 찾아내 전달했다는 어떤 교수가 떠오른다. 병적인 집착이 없다면 도저히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이 스토리라인이 맞는지 틀린지에 대한 단서 조차도 다시 미궁속에 숨어 있다. 어쩌면 게임을 클리어 하는 것 보다 스토리를 끼어 맞추는 과정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는 대목이다. 

흔히 이 같은 스토리텔링은 사이드 퀘스트와 같은 곳에 쓰인다. 메인 줄거리를 놔두고 문제 풀이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곁가지에 가깝다. 문제 해결에 엄청난 노력과 상상력을 동원해야만 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반면 엘든링은 게임 전반에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엮어 섞어 둔다. 모래 사장에서 바늘찾기를 끝낸 뒤, 대다수 이야기들은 다시 또 다른 단서를 남긴채 소실된다. 캐릭터가 죽고 나면 그 다음에는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수십시간 노동 끝에 확인한 스토리라인은 A4 몇 장 수준. 과연 이 게임이 가진 스토리라인이 수십 시간 동안 반복적인 노동을 거쳐서 확인해야 할 정도로 가치있는 스토리라인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개발사가 이러한 방식으로 어설픈 스토리라인을 가리고, 신비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효과를 노리는 전략을 취한다는 부분이 좀 더 설득력있게 다가 온다.
 

[경향게임스=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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