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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주년 특별기획 Connecting People 4> e-스포츠 빛낸 7인방 ①

  • 김수연 기자 jagiya@kyunghyang.com
  • 입력 2004.12.1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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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3년을 회상하며… '프로게이머' 편

경향게임스가 12월 18일이면 창간 3주년을 맞이한다. e-스포츠계에 있어서 지난 3년의 시간들은 마치 마법과도 같은 시간이다. e-스포츠가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시간이 바로 지난 3년이기 때문이다.

경향게임스 창간과 더불어 함께 성장해 온 e-스포츠. 지난 3년의 역사 속에서 e-스포츠를 빛낸 프로게이머 4인방과 프로게임단 감독 3인이 털어놓는 지난 3년 간의 회상이다.

[SK텔레콤-임요환] “프로게이머 임요환으로 다시 거듭난 3년”
이제 한달 후면 나도 26살이 된다. 1997년 19살 때 ‘스타’를 처음 접한 이후, 내가 프로게이머로서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나 자신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런데 ‘PC방 죽돌이’에서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지 벌써 6년이 다 되어간다.

돌이켜 보면, 1999년에 내가 프로게이머로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게임단이나 감독, 선수의 개념이 없을 때였다. 기획사 혹은 PC방에서 게임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받아서 프로게이머들과 연습을 했고, 각종 게임대회 참가 신청을 해주면 이후 일정을 따라서 선수가 경기에 임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한국e-Sports협회가 생기며 제도화되고 프로게이머 등록제 등을 실시하며 전문적인 직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 프로게이머가 소속된 프로게임단이 11개 구단이나 존재하게 되었다.

그간 프로게이머 ‘테란의 황제’로서의 활동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바로 2002년 WCG 대회이다. 그간 몸담고 있었던 IS 팀과 계약기간이 끝나고, 무소속으로 활동할 때였다. 연습상대 구하기도 어려웠고, 상대 선수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재경기까지 치르며 16강을 힘겹게 통과했고 결승전에서 홍진호를 누르고 WCG 2연패를 달성했다. 좋은 성적을 거둬 새로운 팀을 구해야했던 나 혼자서 준비한 대회였기에 그 결과가 더 값진 것이다. 그 위기 상황에서 큰 힘이 되어 주셨던 주훈 감독님, 게임연습을 도와주셨던 소울의 김은동 감독님, 조용호 나경보 박상익 선수에겐 아직도 고마울 따름이다.

가장 힘든 시기를 극복해냈기에, 동양 오리온시절의 고난을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고진감래(苦盡甘來)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SKT 프로게임단 T1 소속선수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프로게임단은 11개가 존재하며 프로게이머 앞에는 늘 소속이 붙어 다닌다. 내가 무소속일 때의 상황을 우승으로 극복하며 새로운 팀을 찾아 나섰던 것처럼 이제 프로게이머는 혼자 설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스토리 라인이 없어 게이머의 자율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전략시뮬레이션게임 ‘스타’로 인해 생겨난 프로게이머와 프로게임리그는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기업들이 게임단을 창단하기에 이르렀고, e-스포츠로서 자리매김하면서 여타의 스포츠와 같이 구단-코칭스태프-선수로 이어지는 제반환경을 구성해 냈다.

이런 환경에서는 얼마나 프로의식을 가지고 자기관리를 잘하느냐에 따라, 선수 생명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나의 프로게이머 생명은 3년 전인 2002년, 홀로서기를 감행했을 때 끝이 날 수도 있었다. 때문에 경향게임스 창간 3주년과 나의 게이머 인생은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는 듯 하다.

이제 e-스포츠로 문화 경제 사회적으로 파급효과를 미치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직업인 프로게이머로서의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좀 더 체계적인 리그 일정진행, 체계적인 대회 규정 확립과 프로로서 자기관리를 할 수 있는 정기적인 기간이 주어졌으면 한다. 프로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자신의 선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자신의 소속 팀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프로란 이름을 위해 최상의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KTF 매직엔스-강민] “또 한번, 양대 리그의 우승을 위해 뛴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프로게이머의 꿈을 가지게 됐다. 지방에서의 게임방 생활 4~5개월 (산에 올라가 수련을 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을 마치고 난 나는 더 이상 있을 곳이 없어 서울로 오게 됐다. 마우스와 키보드, 마우스 패드만을 가지고 서울의 수많은 게임방을 거치면서 연습에만 몰두했다.

당시 나의 목표는 MBC스타리그와 온게임넷 스타리그. 메이저에 오르기 위해선 꼭 거쳐가야 할 관문이었기에 양대리그 예선을 통과하기 위해서 엄청난 연습을 했다. 대회가 생기면 가릴 것 없이 모두 참가했다. iTV를 포함해 소소한 게임방 대회까지 닥치는 대로 참가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좌절을 맛보았다. MBC스타리그 예선에도 연달아 3번은 떨어진 기억이 난다.

온게임넷 챌린지 예선 마저 연이은 4번의 탈락, 하늘이 비웃듯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한 끼 끼니를 때울 돈도, 잠잘 곳이 없어 떠돌아다닐 때 내게 구세주와 같은 형을 만나게 됐다. (김)성필이 형의 도움으로 119직장인 클랜의 힘을 얻어 후원회가 생겨났다. 하루 하루를 힘겹게 생활할 때였는데 후원회의 후원금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후원회 분들을 위해서라도 기필코 우승을 해야했고 죽도록 연습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탈락이었다. 아마도 이시기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내 가슴속에서는 오기가 발동했다. 더 이를 악물었다. ‘흥! 열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열고 들어가겠다’라는 의지와 고집이 하나로 뭉쳐져 지금까지 했던 연습보다 더욱 혹독하게 연습했다.

마침내... 드디어... 난 제1회 MBC스타리그(이전 KPGA) 16강에 올랐다. 그리고 첫 본선 진출에 우승까지 거머쥐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프로게이머를 시작한지 1년 6개월만에 첫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다. 바로 이날은 내 생애 가장 기쁘고 감격적인 순간이며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경험이다. MBC스타리그에서 우승한 후 MBC팀리그 마저 우리 지오팀이 우승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아직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MBC스타리그 우승, 팀리그 우승 후 바로 온게임넷 스타리그도 본선에 올랐다. 4번의 탈락이후 5번째 본선 진출이므로 온게임넷도 첫 본선 진출인 것이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때였는지는 몰라도 온게임넷 마저 첫 본선 진출에 결승진출을 이뤄냈다.

나는 우승만을 생각했다. 탈락하면 탈락했지 2등은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였다. 당시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던 나는 어떠한 경기에서도 떨거나 긴장하지도 않았지만 문제는 내 마음속 깊숙이 자만심이 자리잡고 있었던 게 문제였다. 결승전을 시작한지 두 어시간. 3:1이라는 스코어로 패배하면서 난 준우승에 머물렀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4번의 예선 탈락, 다섯 번 째 준우승. 그러나 여섯 번째 도전에서는 드디어 우승을 거머쥐게 됐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당시 첫 우승부터 지금까지의 과정들과 여러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한 장면 한 장면 재빠르게 지나갔다. 기뻤던, 시련을 겪었던, 슬펐던, 긴장했던 순간들이 모조리 내 머리 속을 휘어 감았다. 난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아마도 이시기가 프로게이머 생활 중 가장 기쁜 날이 아닌가 싶다. 프로리그와 팀리그 개인전 양대 방송사의 우승을 하고 난 뒤 나는 KTF 매직엔스로 스카웃 됐다. 프로게이머 역사상 억대 연봉으로 장기계약을 한 첫 게이머가 된 것이다.

이적 후 반년이 지났다. 지난 6개월간 나는 많은 패배로 인해 양방송사 개인전에 탈락한 상태다. 그러나 3년 전에 그러했듯이 난 절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3년 간 기필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것이다. KTF매직엔스의 명예를 건 양방송사의 단체전은 물론 개인전의 영광까지 모두 거머쥐게 될 날이 꼭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오팀-서지훈] “WCG2004 우승과 내게 큰 발전을 가져다 준 지난 3년”
지난 3년은 나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평범한 학생의 신분으로서 학교와 집을 오가면서 학교에 있는 시간외엔 게임에 매달리며 살았었지만 내가 프로게이머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참가했던 제1회 온게임넷 챌린지리그 예선을 통과하면서 점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에 잘나가던 프로게이머들과 게임을 해도 난 전혀 주눅들거나 밀리지 않던 내 자신을 발견하면서 프로게이머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온라인 예선과 오프라인 대회들을 치르면서 자신감은 신념으로 바뀌고 꼭 최고가 되리라 다짐했다.

게임에 매달린 지 2년째가 되던 19살 때 처음으로 나를 인정해주신 분이 바로 조규남 감독님이다. 제2회 온게임넷챌린지리그 1위 결정전에 진출하면서 지오팀에 입단하게 되었고 꿈에 그리던 프로게임단에서 나는 미친 듯이 게임에 몰두했다. 그 당시의 지오팀은 눈물의 팀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밥 한끼 사먹을 돈이 없어서 끼니를 굶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우리 팀원들은 항상 ‘잘될 거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했다. 그 첫 결실이 올림푸스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이다. 결승전무대에서 마지막 5경기를 이기고 난 후 무대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신 엄마를 보았다. 나도 모르게 덩달아 눈물이 흘렀다. 스타리그 우승을 시점으로 슈마가 스폰서가 되어 슈마지오라는 이름으로 재 탄생했고 우리 팀은 팀리그와 프로리그에서 승승장구하며 우승을 이어갔다.

그 이후 마음가짐이 해이해져서인지 나는 개인전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정신을 차리자며 또다시 마음을 다잡았고 2004 WCG에서 우승을 하게됐다. WCG 대회는 여러 국가가 참가하는 세계적인 대회이지만 ‘스타’ 종목에선 우리나라가 독보적이다. 때문에 그랜드 파이널보다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을 중점적으로 준비했다.

예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국가대표로 선발되었고 본선에서 우승까지 차지했지만 더 의미있는 일은 우리 지오팀이 국가대표 자리를 모두 거머쥐었다는 것이다. 본선을 치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먼 길을 떠났지만 이재훈, 전상욱 선수와 조규남 감독님이 대표감독으로 동행해 더더욱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지난 3년 간 내가 생각했던 일들을 100%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앞으로의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 밑거름이 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게이머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며 앞으로의 3년은 지금보다 더 빛날 것이다.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이윤열] “큐리어스 창단식,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이윤열이 15연승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오랜만에 느껴보는 값진 결과였다. 하지만 나는 내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기 위해 나의 친정이나 마찬가지인 SG패밀리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금전적인 풍요로움보다 심적인 풍요로움을 위해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웃음을 되찾기 위해 옮긴 팀이지만 숙소생활은 ‘암울’ 그 자체였다. 너무 힘겨웠다. ‘내가 너무 경솔했나? 팀을 옮기지 말았어야 했나?….’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정감 넘치는 우리 팀원들 덕분에 견뎌낼 수 있었다. 우리 팀원들은 나에게 웃음을 만들어주었다. 난 내 개인적인 성공에 앞서 SG패밀리인 우리 팀원들이 다 잘되기를 빌었다. 그렇게 8개월 정도를 계약 없이 지내왔었다.

기다림 끝이 낙이 온다고 했던가? 우리 팀은 결국 팬택앤큐리텔이라는 든든한 스폰서를 얻었고 성대한 창단식까지 치렀다. 큐리어스 창단식이 있던 날. 행사장에는 팀원들의 부모님이 모두 참석했다. 부모님들은 아들에게 열심히 하라는 격려를 보내주셨고 팀원들의 각오도 남달라 보였다. 난 내 개인의 성공이 아닌 팀원 전체가 행복해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 동안의 힘든 시간들이 모두, 국내 최고 기업, 최고의 스폰서를 얻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지난 3년 간의 기억들을 회상해 볼 때 가장 감격스럽고 뿌듯했던 기억이 바로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 팀의 창단식이었다.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는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 덩달아 내 자신도 달린다. 서서히 웃음을 되찾은 나는 이제 몸도 마음도 편해졌으니 혼신의 힘을 다해 경기를 준비할 것이다. 더 높이 날아오를 것이다. 3년 후에는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팀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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