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자신의 의지로 출시하는 회사를 일반적으로 ‘서드파티(Third Party)’라고 부릅니다. 서드파티에는 제 3 자적인 입장의 소프트 제공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하지만. 닌텐도는 패미콤 소프트를 만드는 회사를 라이센시(Licensee=허락을 부여받은 사람)라고 불렀고, 일본의 대부분의 소프트 회사가 잇따라 닌텐도의 라이센시가 되었습니다.
84년에 발매된 지 2년째가 된 패미콤은 잠시 기로에 서게 됩니다. 닌텐도 이외의 소프트, 즉 서드 파티가 제작한 소프트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7월에 허드슨이 를, 9월에는 남코가 을 발매했습니다. 84년에는 이 두 회사뿐이었지만, 멈출 줄 모르는 ‘패미콤 붐’은 서드 파티를 잇따라 참여하게만들어, 85년에는 16개사가 패미콤소프
그것은 이상하게도 같은 해의 사건입니다. 1983년 미국에서 아타리 쇼크가 일어난 바로 그때, 일본에서는 닌텐도가 패밀리컴퓨터(아하 패미콤)를 83년 7월 1일에 발매했습니다.미국에서 태양(아타리VCS)이 질 때, 일본에서는 태양(패미콤)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지구의 자전을 본뜬 이런 비유가 당시의 일본과 미국의 게임 업계 사정을 잘
워너 출신 경영자는 회사의 재무 사정이 나빠지면, ‘신제품 개발의 일괄동결’이라는 멍청한 결단을 종종 내렸습니다. 사내의 기강 단속도 그들의 단골메뉴여서, 게임제작자들의 복장이나 근무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했습니다.그뿐 아니라, 프로그래머들이 마약에 손대지 못하게 하려고 전백악관 SP를 보안 부장으로 초빙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연히 사원들은 경영진을 신용할 수
인베이더에 의해서 게임의 관심은 갑자기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이 현상에 이끌려 ‘아타리VCS’는 매출이 급속하게 신장됩니다. 이때가 되자 유량 소프트도 조금씩 갖추기 시작했습니다.[집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기기는 거시적인 시점에서 본다면 분명히 시대가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시적인 소비자 심리에서 본다면 그것은 고액의 기기였을 뿐이다. ‘산업은 희망,
하지만 사람 마음은 정말로 알 수 없습니다. 는 세상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었지만 팔리는 것은 복사품 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타리 사는 실제로 상품지명도가 높은 대신 매출 회수가 잘 되지 않아 급기야 자금난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전환기는 갑자기 찾아옵니다. 76년 노런 부시넬은 결국 아타리 사를 영화 . 음악 산업을 하는 대기업인
“유타주립대학에 재학하던 시절에 친구와 포커를 하다가 수업료 전액을 잃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솔트레이크시티의 어떤 유원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이 이야기는 노런 부시넬의 젊은 날의 에피소드입니다. 그는 이때부터 게임을 비즈니스로 삼는 공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페이스 워’를 거리에 갖고 나온다면 모두들 기뻐서 코인을 던질
여명기의 게임이라는 것은 인텔리, 그것도 ‘초’가 붙을 정도의 인테리들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국립연구소의 박사나 미국에서도 톱 클래스의 공과대학생들로, 그런 직함을 가진 과학자가 게임의 제작자였습니다. 시대로 말하자면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후반까지입니다. 게임은 과학자들의 실험적인 창작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이 창작물은 무료 전시, 혹은 무료
1960 년대가 되자, 게임의 개발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MIT) 미디어 연구실이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연구소에 모인 학생들이 두 번째 게임 제작의 주역이었습니다.당시의 MIT 학생들과 같은 프로그램의 달인들은 ‘해커’ 라고 불리었다. 50년대까지의 해커란 ‘힘으로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도구실’ 이라는 의미로, 80년대 이후의 해커는 ‘컴퓨터 범죄자’
맨하탄 계획에 참여했던 윌리 비긴보섬 박사는 과학을 평화에 이용하는 일환으로 게임 개발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1958 년 세계 최초의 게임이 탄생되었습니다.박사의 전문지식은 전자공학 외에 물리학, 방사선학 등 다방면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중에서 과감하게 게임을 연구대상으로 선택하고 또 완성 시켰습니다. 우리처럼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결단을
“게임은 처음에는 비즈니스의 대상이 아니었다. (중략) 게임이 생겨났을 때 돈을 생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헌신적인 과학자가 한 명 있었을 뿐이다.”1945 년 8 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오늘날의 게임은 기묘한 역사의 끈에 의해 연결되어 있습니다.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 ‘맨하탄 계획’에 참여했던 과학자 윌리 비긴보섬 박사
만일 자동차나 맥주처럼 규제나 행정지도가 있었다면 게임 비즈니스는 이렇게 생생유전을 되풀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히라바야시 히사가즈게임 업계에서나 일반산업계에서나 게임을 특수한 세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프트 비즈니스는 특수하지도,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아카오 고우이치닌텐도나 세가 등 기존 주요 게임업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전이나 컴퓨터 업계를 비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퍼스널 컴퓨터와 패미콤의 여명기였던 80 년대 후반에는 액션과 더불어 게임의 주류였습니다. ‘죠크’ ‘미스터리 하우스’ ‘신오니가시마’ 등의 명작이 배출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동사와 명사를 조합한 명령을 키보드롤 입력했습니다. 그 후에는 ‘○○(명사)’를 ‘본다’ 등의 명령을 선택해 가면 스토리가 진행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종이와 신의 차이라는 것은 ‘자유도가 있다’와 ‘자유도가 없다’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작자가 준비한 캐릭터나 스토리에 얽매이는 것’과 ‘스스로 캐릭터와 스토리를 창조해 가는 것’이라는 차이입니다.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노는 사람의 ‘질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테마 파크의 어트랙션에서 놀 것인가 아무 것도 없는 들판에서 나무 조각을 주워
‘컴퓨터는 일찍이 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신이다.’이런 말의 유희는 어떻습니까?원고용지, 도화지, 엽서, 집계표, 양식, 정보 카드. 컴퓨터는 지금까지 기본적으로는 종이라는 매체의 대체물로서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멀티미디어화가 진행된 결과 컴퓨터는 전화, TV를 비롯해 모든 미디어를 통합하기 시작했습니다.그런 현상을 ‘컴퓨터가 미디어가 된다’고 표
비디오 게임의 근원적인 장르는 무엇일까요?‘반드시 액션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많겠지요. 반사신경이 호되게 자극되어 캐릭터를 조작하는 생리적 쾌감을 맛볼수 있는 것이 게임의 묘미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비디오 게임의 본질은 시뮬레이션이라고 강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리얼리티(현실감), 인텔리전스(지능), 월드(세계)라는 세가지 시뮬레이션의 방향이
판매하는 상품을 명확하게 장르 구분한다. - 타 업계에서는 당연한일이 게임 업계에서는 당연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게임의 장르 구분이 항상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거기에 게임이 가진 다이나미즘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고정화된 장르를 전제로 발상된 게임만큼 시시한 것은 없습니다.참신한 발상으로 만들어져, 기존의 장르 구분에 들어맞기 어려운 ‘장르
언제부턴가 게임에 몰입하는 것을 ‘미친다’ 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치크센트미하이가 말하는 ‘프로우’를 일본어로 해석할 경우 가장 적절한 것이 미치는 것일 겁니다. 그는 ‘프로우’경험의 특징으로서 다음의 다섯 가지를 지적했습니다. 첫 번째 ‘주의의 집중’ 입니다. 프로우 상태에 있는 사람은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예민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아의식
최근에는 컴퓨터도 웃으면서 일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는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이미지로 이야기한 경우가 많았습니다.컴퓨터는 냉정하다, 관리를 위한 도구다. 그러나 게임기는 따뜻하다. 기쁨을 위한 도구다.게임기를 타락을 위한 도구라고 백안시하는 사람도 많습니다만, 컴퓨터는 그 이상으로 수상한 도구였던 것입니다.왜일까요. 저는 ‘
많은 놀이 이론중에 유명한 이론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치크센트미하이가 제창한 ‘프로우 이론’입니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놀이와 현대문명의 관계를 고찰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큰 연구입니다.놀이와 일을 대립되는 개념으로 간주하지 않은 것이 이 이론의 커다란 특징입니다. 즉, ‘놀이는 즐거운 것,일은 힘든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지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