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티엑스(FTX) 거래소 파산이 가상화폐 전문은행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쉽게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눈길을 끈다. 가상화폐를 주 사업으로 운영을 이어가던 업계 은행들이 에프티엑스 파산 이후 업계 철수 또는 유동성 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을 선택하고 있다.

미국의 가상화폐 전문은행은 실버게이트(Silvergate)는 에프티엑스 파산 관련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업체 중 한 곳이다. 실버게이트는 지난 1월 17일(현지시간) 2022년 4분기에 걸쳐 10억 달러(한화 약 1조 2,400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0억 달러의 순손실은 실버게이트 고객들이 대량으로 예금을 인출하는 과정 등에 영향을 받았다. 가상화폐 시장 약세와 에프티엑스 거래소 파산이 겹침에 따라 실버게이트에서 지난해 4분기 빠져나간 고객 예금 규모는 80억 달러(한화 약 9조 9,200억 원)였다.
실버게이트는 비용 감축을 위해 현재 40%의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투자 포트폴리오 개선을 통해 활로를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에프티엑스 파산 직전 뉴욕 증시에서 50.96달러(한화 약 6만 3,190원)에 거래되던 실버게이트의 현재 주가는 13.31달러(한화 약 1만 6,504) 수준이다.

미국 뉴욕 기반 상업은행인 메트로폴리탄은행(MCB)은 지난 1월 9일(현지시간) 가상화폐 관련 서비스를 중단했다. 중단된 메트로폴리탄 은행의 가상화폐 관련 사업으로는 직불카드 발행과 결제 및 계좌 서비스 제공 등이 있었다.
메트로폴리탄은행은 최근 서비스 제공 중단이 가상화폐 산업의 최근 발전, 규제 환경의 변화, 은행의 운영 사례를 반영할 결정이라고 밝혔다. 발표 시점을 기준으로 현재 가상화폐 관련 서비스가 메트로폴리탄은행의 매출과 예금에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1.5%와 6%였다.
지난 2017년 이후 메트로폴리탄은행이 가상화폐 산업 관련 서비스를 확장해왔다는 점에서 최근 서비스 중단을 주목할 만했다.
메트로폴리탄은행의 가상화폐 사업 종료에는 보이저디지털(Voyager Digital) 등의 업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지난 7월 미국에서 파산한 디지털자산 중개업체인 보이저디지털은 자산 보관처로 메트로폴리탄은행을 이용했다.

미국의 가상화폐 창업투자회사(벤처캐피탈)인 디지털커런시그룹(DCG) 산하 제네시스트레이딩(Genesis Trading)도 에프티엑스 파산 이후 심각한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다.
현지 매체인 블룸버그는 금일인 1월 19일 제네시스트레이딩이 빠르면 이주 내로 법원에 파산을 신청할 수 있다고 짚었다. 제네시스트레이딩은 에프티엑스에 자금이 묶인 이후 관련 업체에 원리금 지급을 중단한 바 있다.
업계는 제네시스트레이딩의 유동성 문제는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인 제미니(Gemini) 등 산업 내 직접적인 침투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제미니는 지난 1월 2일(현지시간) 제네시스트레이딩에 9억 달러(한화 약 1조 1,457억 원) 규모의 부채 상환을 촉구했다.
제미니는 제네시스트레이딩과 연 8% 이자를 지급하는 가상화폐 예치 서비스를 운영했다. 제미니의 가상화폐 예치 서비스 이용자는 34만 명 이상으로 전해졌다. 제네시스트레이딩의 모기업이 2대 주주로 있는 국내 가상화폐 고팍스도 원리금 지급 중단에 악영향을 받은 상태다.

업계에서는 가상화폐 투자은행의 운영 불안이 다음 시장 붕괴의 진앙지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블록체인 분석업체인 아케인리서치(Arcane Research)는 이달 초 제네시스트레이딩의 모기업이 자회사의 자산을 매각할 경우 시장 붕괴가 발생할 거라고 내다봤다.
아케인리서치의 관측은 디지털커런시그룹의 자회사 중 한 곳인 그레이스케일(Grayscale)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순환 공급량을 각각 3.3%와 2.5%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왔다. 아케인리서치의 분석 이후 디지털커런시그룹이 보유 자산을 매각할 거란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영국의 경제매체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월 12일(현지시간) 제네시스트레이딩의 부채가 30억 달러(한화 약 3조 7,440억 원)에 이르며 디지털커런시그룹이 상환을 위해 자산 매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디지털커런시그룹의 자산 매각 가능성 제기 이후 저스틴 선(Justin Sun) ‘트론’ 블록체인 프로젝트 설립자는 디지털커런시그룹 자산 매입을 위해 10억 달러(한화 약 1조 2,371억 원)를 쓸 의향을 로이터 통신을 통해 지난 1월 13일(현지시간) 밝히기도 했다.
로이터는 저스틴 선 설립자가 디지털커런시그룹의 어떤 자산을 매입할지는 공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유명 산업 참여자들이 과거에도 유동서 문제를 겪는 업체들의 자산 매입을 공개적으로 표명했지만 그러한 거래가 반드시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로이터의 언급이었다.
